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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중에 기억해야 하는 것

두려움 가운데 우리는 종종 고립감을 느낀다. 시편은 모든 과정 가운데 하나님과 다른 이들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사진 제공: 마이크 두보스, 연합감리교회 뉴스.
두려움 가운데 우리는 종종 고립감을 느낀다. 시편은 모든 과정 가운데 하나님과 다른 이들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사진 제공: 마이크 두보스, 연합감리교회 뉴스.

많은 사람이 시편을 좋아한다. 표현하기 힘든 우리의 감정들을 위한 언어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시편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목소리를 들려주기도 하고, 여러 번에 걸쳐 창조주 하나님과 경이로운 그분의 창조에 대한 감탄을 표현해 주기도 한다. 

시편은 또한 세상에 대한 놀랄만한 것들을 표현하기도 한다. 아래 예들을 보라.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시편 22:7)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었으므로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였나이다
그들이 나를 치려고 함께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시편 31:13)

그들이 종일 내 말을 곡해하며
나를 치는 그들의 모든 생각은 사악이라 (시편 56:5)

내 원수들이 내게 대하여 말하며
내 영혼을 엿보는 자들이 서로 꾀하여 (시편 71:10)

내가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나
주의 법도를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시편 119:141)

피해망상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외로움과 공포

이 구절들은 시편 기자가 느꼈던 외로움, 의심이나 회의, 또 피해로 인한 두려움을 묘사한다. 사람들이 자기를 해하려 한다는 상황을 가정하기도 하고 버림받은 느낌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들 중 여럿은, 특별히 피해망상적인 생각을 표현하는 것들은 다윗 왕이 남긴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다윗이 시편에 표현했던 공포나 회의감에 갇혀 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는 겁을 먹고 숨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신 두려움이나 내면의 공포를 인정하면서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고자 했던 그의 의지가 오히려 그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했던 것 같다. 다윗은 세상 전부가 그를 해하려 한다는 느낌 중에도 인내했다. 

브레니 브라운의 지적에 따르면 수치심은 우리가 그것을 수치심으로 부르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수치심의 관련 감정인 공포나 부적당감(inadequacy)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어딘가에 가두겠다고 협박하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사실주의의 가혹한 빛에 그들을 노출시키고 우리의 공포를 무효로 만든다. 

혹시 시편 기자들이 피해망상적인 생각을 계속 표출했던 것이 비슷한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들이 가졌던 두려움과 의심에 진실의 빛이 비취도록 한 것은 아니었을까? 

끈기

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속박하는 것이나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우리가 끈기를 향해 나아가게 한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다윗에게 공감할 수 있다. 우리도 적들에게 둘러싸인 것처럼 느끼기도 하고 불확실성에 시달리기도 한다. 지금 당장, 우리는 많은 어려움에 둘러싸여 있다. 우리를 위협하는 질병, 정치 싸움, 재정적 불확실성 등이다. 우리 공동체 내의 믿음의 가족들이 어떤 미래를 맞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불확실성은 우리가 블라인드를 내리고 안에 숨고 싶게 만들 수 있다. 물론 실내에 숨어 있는 것에 우리 모두 염증을 느끼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오늘 우리가 느끼는 불안감의 근원은 무엇인가? 그 이름을 부를 수 있는가? 

우리의 믿음은 끈기의 원료가 될 수 있다. 믿음이라는 렌즈는 우리를 위협하는 것에 관한 다른 관점을 제공한다. 시편 기자들은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공포를 표현하는 같은 노래 안에 확신과 진리에 관한 음표들이 또한 들어있다.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시편 22:24)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견고한 성에서 그의 놀라운 사랑을 내게 보이셨음이로다(시편 31:21)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시편 56:13)

이 구절들은 우리가 두려움 가운데 홀로 숨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두려움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다. 오히려 내면의 두려움과 공포를 우리가 인식하고 그 이름을 부르는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걱정과 고난 가운데 함께하시도록 초대한다. 

함께 계신 하나님 

시편은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우리는 시편을 통해 우리를 속박했을지도 모를 두려움, 부적당감, 수치의 이름을 부를 공간과 기회를 얻게 된다. 우리의 두려움을 정확히 표현할 언어를 찾지 못하는 순간에도 시편은 우리 마음속 공포와 소망을 표현하도록 돕는다. 

두려움은 우리를 고립시키려 한다. 우리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내몰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나게 한다. 단지 우리만 고립감이나 불확실성으로 힘겨워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오늘 내가 가진 불안감의 근원들을 말할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시편에 나타난 고백들을 읽으면서 우리가 찾지 못한 그 언어들을 찾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나만 두려움 안에 홀로 고립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길 소망한다. 

라이언 던은 연합감리교회 공보부의 온라인 참여 플랫폼인 Rethink Church 담당 목사입니다. 이메일로 연락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