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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아이콘 재키 로빈슨의 감리교 신앙

야구의 전설로 불리는 재키 로빈슨은 메이저리그의 인종차별 철폐를 도왔던 인물이다. 그의 전설적 커리어 내내 그는 감리교 신앙을 붙들었다. 사진 제공: 크리스털 캐비니스, Canva 콜라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야구의 전설로 불리는 재키 로빈슨은 메이저리그의 인종차별 철폐를 도왔던 인물이다. 그의 전설적 커리어 내내 그는 감리교 신앙을 붙들었다. 사진 제공: 크리스털 캐비니스, Canva 콜라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죽음의 위협, 인종 학대 및 신체적 위험에 포위된 채 살았던 재키 로빈슨은 메이저리그의 인종차별 벽을 넘어섰던 1947년 동안 단 한 차례도 공적인 자리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크리스 램과 함께 “Jackie Robinson: A Spiritual Biography(재키 로빈슨의 영적 자서전)”을 집필한 마이클 G. 롱은 흑인 야구 리그에서 “방울뱀 같은 성질”로 불렸던 로빈슨의 평판을 고려한다면 분명 놀라운 성과라고 말한다.  

로빈슨에게는 욕구를 다스리고 시련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을 주었던 잘 알려지지 않은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바로 그의 믿음이었다. 

그의 아내 레이첼 로빈슨이 롱에게 나눈 바에 따르면, 야구장에서 긴장된 하루를 보낸 후 로빈슨은 침실로 가서 무릎을 꿇고 힘과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곤 했다고 한다. 

“그의 믿음은 위로의 원천이자 또한 도전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롱은 말했다. “(그는) 긴장 가운데 위안을 찾았고, 또한 반격하여 싸우지 말라는 도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감리교인이시다’

로빈슨은 성장하면서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에 있는 스콧감리교회에 출석했다. 하지만 그의 감리교 신앙이나 칼 에버렛 다운스 목사와의 인연은 많은 이야기와 전기에서 경시되거나 무시되었다. 

채드윅 보스먼이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로빈슨에 관한 영화 “42”의 한 장면이 이를 잠깐 언급할 따름이다. 

명장면이긴 하다. 

해리슨 포드가 연기했던 브랜치 리키는 극 중 브루클린 다저스의 단장으로 로빈슨을 영입해 인종 장벽을 허문 인물이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그는 선언한다: “로빈슨은 감리교인입니다. 저도 감리교인입니다. 하나님도 감리교인입니다. 잘못될 리 없습니다.” 

물론 리키가 실제로 이 말을 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그들이 공유했던 감리교 신앙은 분명 로빈슨을 선택하게 된 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압력을 받고 있는 은혜

로빈슨은 통산 3할 1푼 1리의 타율을 기록했고 신인상과 MVP를 수상했으며, 1955년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일조했다. 그는 야구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고, 메이저리그는 1997년 그의 등 번호 42번을 영구결번했다. 

“가장 놀라운 점은 로빈슨이 살해 위협을 받는 중에 이런 기록을 남겼다는 사실입니다,” 롱은 말했다. 

로빈슨은 선수 생활 내내 살해 협박을 감내해야 했고, 인종차별주의자 팬들과 선수들의 학대를 견디면서 경기해야만 했다. 1947년에는 그의 다저스 동료들마저도 흑인 선수 영입에 항의하는 청원서에 서명해 리키 단장에게 제출하기도 했다. 

1947년 4월 22일에 브루클린에서 열린 경기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감독이었던 벤 채프먼이 N으로 시작하는 인종차별적 표현과 욕설을 그에게 퍼붓기도 했고, 자기 팀 선수들도 그렇게 하도록 한 일은 유명한 일화이다. 

“그 같은 일은 심리적으로 큰 해를 입혔습니다,” 롱은 말했다. “간단한 일로 치부할 수 없는 일입니다만, 경기장에 들어가면서 관중석에 앉은 누군가가 나를 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입니다.” 

하지만 로빈슨은 더 위대한 공동선을 위해 보복하려는 열망을 억눌렀다. 그가 실패한다면, 많은 흑인 야구 선수들이 큰 리그에서 뛰어볼 기회조차 얻지 못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로빈슨의 감리교 배경

소년 로빈슨은 어머니 말리 로빈슨의 끈질긴 권유로 스콧감리교회에 출석했다. 1938년 다운스 목사의 부임은 이미 지역 사회의 스포츠 영웅으로 알려졌던 로빈슨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다운스 목사는 스콧감리교회에 흑인 사회주의 복음 운동을 시작한 장본인이었습니다,” 롱의 말이다. “그는 교회가 지역 사회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로빈슨은 그런 생각에 매료되었습니다.” 

또한 말리 로빈슨은 이미 그의 아들에게 흑인으로서의 인종적 자부심을 심어줬었다. 그녀는 아담과 하와 이야기를 독특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었고, 어린 재키는 이를 마음에 품었다. 

“말리는 아담과 하와가 원래는 흑인이었다고 재키에게 가르쳤습니다,” 롱은 회상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선악과를 먹은 것을 알게 되자, 하얗게 질린 것이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 이야기의 교훈은 재키의 검은 피부가 하나님이 주신 자랑스러워해야 할 선물이라는 것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또한 내세에서 더 나은 세상을 기다리는 것보다 현재의 삶에서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쳤다. 

로빈슨의 싸움은 1960년대의 민권투쟁 기간 동안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동료로 야구계를 떠난 뒤에도 계속 이어졌다. 

그는 1972년 심장질환과 당뇨 합병증으로 53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했다. 당뇨로 인해 거의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였다. 

세 명의 캘리포니아 연구자들에 의해 지난 4월에 발표된 논문은 인종차별이 로빈슨의 진짜 사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연구자들인, 탐라 번스 롭, 알리샤 모어헤드-지, 데릭 노바첵은 캘리포니아 주립대가 발표한 글에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어떤 사람이 반복적으로 인종차별의 스트레스를 경험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체내에 다량 분비된다. 높은 코르티솔 수치는 당뇨와 고혈압 환자에게서 관찰되는 높은 수준의 혈당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짐 패터슨은 내쉬빌의 프리랜서 작가입니다. 이메일을 보내 연락하세요. 이 이야기는 2021년 7월 14일에 처음 게시되었습니다.